겨울 동안 추운 밤을 보내던 날이 지나가고 이제 봄이 오나 보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외풍 때문에 실제 온도가 낮았다.(😂) 오늘 아침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포근함을 말해줬다. 먼지도 물론 좀 있었다. 추운 공기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멍하게 잠깐 숨을 고르던 평소와 다르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어디로든 나가자. 가까운 미사동 어떠니? 카페도 가자! 이북 리더기 들고서 30분 뒤에 만나!”
“좋지, 곧 보자”
5호선 미사역, 높은 오피스텔이 빽빽하게 들어선 신도시 구역과 조정경기장 너머 한강 근처 그린벨트 구역은 행정구역 상 미사동으로 같다. 우리가 놀러 가려는 미사동은 상수원 보호 구역과 가까워 그린벨트로 묶여있다. 방치(?) 해 둔 자연과 높이 제한으로 적당한 높이로 지어진 제멋대로의 건물들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재밌다.
나와 친구는 그린벨트 미사동과 인연이 깊다. 미사동의 뒷벌 텃밭과 하남시민체험농장 두 곳에서 텃밭을 분양받아 2년간(2020년-2021년) 농작물을 경작한 경험이 있다. 취미 부자, 행동력 갑인 내 친구가 경쟁률 높은 텃밭 추첨에서 당첨이 되는 덕분이었다. 여름 장마 때, 푹푹 빠지는 밭에서 쓰러진 농작물을 정리하다가, 입고 있는 옷 안에 속옷 라인대로 햇빛에 태닝이 되서 피서에 안 가도 되겠다며 깔깔 웃었언 기억이 새록 새록하다.

농작물은 한 번의 깊은 관심보다는 얕은 관심을 자주 필요로 한다. 잡초를 제때 뽑아주는 일, 물을 적당한 간격으로 주는 일, 잎사귀를 솎아주는 일 등… 농경 초보였던 우리는 남들보다도 더 자주 텃밭을 찾았다. 그 당시 그린벨트 미사동은 미사 대로라는 왕복 8차선의 큰 길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먹지 않으면 도보로 접근하기에 쉬운 곳이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 조정경기장과 신도시 미사동을 지르는 지하도가 생겼다. 쌩-하고 달리는 차를 만나지 않는다니, 뚜벅이에게는 더 없는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텃밭 당첨의 기회를 잡지 못한 2022년에는 지하도를 활용할 일이 없었다.
오늘 별안간 그린벨트 미사동이 떠올랐던 것이다.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소 플러스’에서 점심특선 갈비 정식을 먹었다. 아저씨가 가져오신 따듯한 참 숯불의 온기에 스르륵 몸이 녹았다. 나무 그릇에 담긴 2인분의 갈비는 맛있었다. 즐거운 식사였다.
다음 장소는 캠핑 용품 브랜드 ‘스노우피크(Snow Peak)’의 매장이다. 스노우피크는 퀄리티 높은 캠핑 용품과 아웃도어 옷을 만드는 브랜드다. 캠핑이 핫해지면서 이 브랜드도 인기가 아주 많다. 매주 주말에는 절대 오기 힘든 곳이지만 평일인 오늘은 한산했다. 건물은 총 3층이다. 1층은 카페 2층 매장 3층은 직원 오피스 및 옥외 베란다였다. 제품들이 만듦새가 좋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구경을 마치고 한강이 있는 뚝방길 방향으로 걸어갔다. 예전에 뚝방길을 걷다가 봤던 카페에 들어갔는데, 점심시간이라 카페에는 식사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식사를 파는 카페였다.) 이곳에서 대화를 하려다가는 잘 들리게 말하기 위해 목소리 볼륨이 높아질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렸다.
온 길을 되돌아와 점심을 먹은 식당 바로 옆에 있는 ‘홍종흔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같은 부근을 맴도는 기분) 베이커리에도 사람이 아주 많았다. 2미터가량 되는 키가 큰 식물들이 쭉 놓여있었다. 살짝 더워진 우리는 얼음이 가득한 커피와 딸기 라테를 주문했다. 음료는 그럭저럭 아주 달았다.
새 컴퓨터를 구입하신 큰이모가 설정을 못하셔서 전화로 도와드린 이야기, 커피 원두가 똑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집 앞 카페에 커피를 사러 나갔다 온 이야기, 밀린 집안일을 눈 딱감고 GTD(Get Things Done의 준말) 방식으로 모조리 끝내버린 이야기 등… 나의 주말 일상을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과 청주에 있는 오일장에서 생쌀로 튀밥을 튀겼다고 했다. 튀밥을 좋아하는 나에게 줄 튀밥을 내일 주겠다고 하는 친구에게 바둑을 배우러 다니던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강냉이 튀기는 기계가 너무 재밌어서 30분 동안 관찰했다는 TMI도 전달했다.
우리는 3시간을 이야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야심차게 들고간 이북 리더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밖은 해가 지고 여전히 쌀쌀하다. 그런데 왜 봄이 온것 같지? 오늘 아무 이유 없이 미사동에 가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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