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한 날씨예보
섬 투어 2일차의 아침이다. 애석하게도 하늘에 구름이 많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닷속을 보러 가는 씨워킹을 하기로 한 날인데 말이다.
친구와 나는 뱃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 아침을 먹으러 숙소 근처에 있는 파인애플 번 맛집에 갔다. 파인애플 번과 함께 먹을 간단한 아침 메뉴도 주문했다. 마늘이 들어간 흰죽과 우육면은 그냥 그랬고 파인애플 번이 제일 맛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챙겨온 일본산 멀미약도 잊지 않고 먹었다. 그랩 택시를 타고 제셀턴 포인트 선착장에 도착하니 주말이라 제법 사람이 많았다.
카운터의 직원들은 흥정하던 어제와 다르게 호의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하지만 예약된 표를 QR 티켓으로 프린트하는 일을 너무 느리게 처리해 줘서 하마터면 배를 제시간에 못 탈 뻔 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말레이시아다. 마무틱 섬으로 출발!
날씨 탓인지 전날보다 파도가 높았다. 작은 모터 배는 위아래로 끊임없이 쿵쿵 거리며 오르락 내리락했다. 배 밖으로 튕겨 나갈까 봐 친구와 나는 가는 내내 안전바를 꽉 잡았다. 파도 디스코 팡팡을 타며 15분 뒤에 마무틱섬에 도착했다.
마무틱 섬은 성난 날씨와 달리 평온했다. 울창한 트로피컬 나무들과 아름다운 바닷가가 우리를 반겼다. 정말 아름다웠다. 경치 구경하던 우리 앞에 나타난 섬 투어 관계자는 30분 뒤에 씨워킹을 갈 것이니 준비하라고 했다. 바다와 너무 급하게 친해져야 해서 부담스러웠으나 날씨가 더 나빠지기 전에 얼른 다녀오는 게 맘 편할 거라 생각했다. 어두컴컴한 섬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보트를 탔다. 높은 파도를 가로질러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정박된 큰 배에 내렸다.
바로 씨워킹으로
우리는 일단 씨워킹을 위한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안내요원이 배 갑판에 쏟아 준 고무 재질의 실내화 무더기에서 본인 사이즈에 맞는 것을 알아서 골라야 된다. 사방으로 흔들리고 물이 즐비한 배 위에서 허리를 숙여 맞는 짝을 고르고 나니 멀미가 올 것 같았다. 재빨리 기댈만한 기둥에 몸을 기대고 친구와 나는 심호흡했다.
안내요원은 물속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신호를 알려줬다. 괜찮다, 좋지 않다, 올라가고 싶다 이런 간단한 것들이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가면 평소와 다르게 귀가 더 먹먹할 것이니 압력을 맞춰주는 작업을 3가지 알려줬다.
- 턱관절 움직이며 귀 쪽 근육 움직이기
-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리고 공기를 마시기
- 코를 손으로 막고 귀로 바람 내보내기 (발살바법)
속전속결 준비가 끝나고 한 명씩 바다에 들어갔다. 씨워킹은 다이빙 장비 없이 산소가 공급되는 커다란 돔 형태의 기구를 머리 위에 쓰고 진행된다. 다이버가 나를 붙잡고 수심 4m 정도 내려가 바다 지표에 설치된 봉 앞에 데려다줬다. 흐린 날씨 때문에 저 멀리 바다가 뿌옇게 보였다. 하지만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눈앞으로 열대어들이 헤엄치며 다가왔다. 바닷속에 대기 중이던 다이버들이 빵 부스러기 같은 음식으로 물고기를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씨워킹은 힘들다
씨워킹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들은 섬 해변가에서 스노클링으로 만났던 친구들과 비슷하다. 스노클링과 차이는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모인다는 점이다. 봉이 설치된 주변으로는 해변가에는 안 보였던 산호초들이 있다. 산호초에는 귀엽고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아름다워 보였다.
경이로운 바다 생명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즐겁지만 씨워킹은 상상과 다르게 너무 힘들다. 산소 모자는 물살에 계속 움직이고 심지어 벗겨지려고 해서 아래로 끌어내려야 하는데 무거워서 어깨가 너무 아프다. 턱 밑에서 찰랑거리는 물을 피해 숨 쉬는 것도 상당히 공포스럽다.
제일 문제는 소음이다. 산소가 주입되며 나는 윙-하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이동 시간과 뱃멀미를 감수하는 수고에 비해 다소 짧은 러닝 타임(30분 이내)이지만 더 길었다면 도중에 나와야 했을 것 같다.
씨워킹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에 돌아와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함께 씨워킹을 했던 말레이시아 국적의 여행객에게 씨워킹이 어땠는지 물어봤는데 그들도 우리만큼 씨워킹이 힘들었다고 했다. “Crazy thing…” 길지도 않은 짧은 단어에서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말톡 usim 링크
마무틱섬과 사피섬에서 스노클링
마무틱 섬은 따로 음식을 먹을 만한 시설이 없어서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유레카 팝콘을 간식 겸 점심처럼 먹었다. 달고 고소한 팝콘은 에너지 그 자체였다. 우리는 힘을 내서 스노클링을 했다. 마누칸에서 못 봤던 물고기도 실컷 구경했다.
우리는 래시가드를 입은 채로 12시쯤, 배를 타고 사피섬으로 이동했다. 사피섬은 가야섬 근처에 있는 섬인데, 그야말로 열대 섬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섬이었다. 어느덧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흰 모레 사장과 에메랄드 바다가 반짝였다.
아쉽게도 사피섬은 물고기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경치만큼은 어떤 섬들과 견주었을 때도 밀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사피섬 야외샤워장
해가 뜨고 나니 스노클링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리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사피섬의 샤워장에 갔다. 사피섬의 샤워장은 천장이 없고 가림막만 있다. 간이 벽 하나를 두고 남자와 여자 샤워실이 나누어져 있고 옆쪽 건물의 창문이 훤히 보이는 아주 신기한 곳이다.
여기에서 씻어야 하는지 고민이었으나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는가 싶어서 샤워를 시작했다. 최대한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고 벽 쪽 자리에 붙어서 최대한 빨리 씻었다. 샤워기도 물줄기가 스프링클러처럼 흩뿌려지는 스타일이라 샤워가 쉽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코코넛은 역시 맛있다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코코넛을주문했다. 커다란 칼로 거침없이 코코넛을 다듬는 소년의 능숙한 솜씨가 놀라웠다. 코코넛은 맛있었다. 오늘이 섬 투어 마지막 날이라니 아쉬웠다. 코타키나발루에 다시 오게 되면 반드시 다시 오겠다며 친구와 나는 진한 여운을 느끼며 돌아오는 배를 탔다.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지금이라도 다녀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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